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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 / EP.14

galpinote 2024. 7. 7. 00:30

 

 

 

 

 

 

선재 업고 튀어

 

 

 

E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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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천천히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벗어 놓은 셔츠의 주름 자국, 다 마신 커피 잔 바닥의 얼룩, 껌에 새겨진 잇자국,

늘어난 머리 고무줄, 텅 빈 채 흔들리는 그네, 안 잊히는 전화번호,

이미 없는 것들을 안고 있는 마음의 짓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 자랄수록 위태로워졌겠지. 그러기를 멈출 수도 없었겠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만날 사람들은 만난다. 긴박한 갈구로 서로를 호환한다.

서로의 유일에 몸을 던져 서로의 샤먼이 된다.

낮은 웅얼거림, 떨림과 더운 숨결로 서로의 시원이 된다.

세간世間의 단 한 사람 품을 때 그는 나의 샤먼, 이전과 이후가, 시작과 끝이, 원인과 결과가 쓸모없어진다.

나만 들을 수 있는 음성, 나만 볼 수 있는 얼굴, 나만 알 수 있는 표식.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도 사라지겠지.

열 번 백 번 같은 시작이 와도 같은 것을 택하는 사람들,

언제까지나 어쩔 수 없는 사랑들.

 

 

김박은경, <홀림증> 중